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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平和祈念公園)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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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平和祈念公園)

오키나와 촌놈 2020. 2. 26. 09:30

#1 이토만시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오키나와 남부의 이토만시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 규모가 상당한데요, 이곳은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곳이자 전쟁의 참혹함과 참상을 알리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만주침략 때부터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한 지상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 때까지의 희생자들을 이곳에서 기리고 있는데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사실이 조금 혼란스럽게 다가오네요.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일본 아니었던가...?? 뭐 어쨌거나 일본인 이외에도 이곳은 여러 나라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는 곳이니... 일단 조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키나와 이토만시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

이곳은 오키나와 나하공항에서 출발하면 30~40분 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에요. 오키나와 남부 이토만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항에서는 도미구스쿠시를 지나 이토만시까지 내려온 후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이곳을 방문한 후에 동쪽으로 계속 차를 운전해서 치넨미사키공원(知念岬公園)까지 방문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치넨미사키공원은 많이 가시는데 이곳은 스킵하시는 분들이 꽤나 계셔서 오키나와 촌놈은 꼭 이곳을 방문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곳은 한국인으로서도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하거든요.

#2 한국인의 영혼이 깃든 곳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곳은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 합니다. 더운 날 가면 그냥 땀에 홀딱 젖어서 오기 일쑤예요. 공원 내 주요 장소들은 100엔짜리 셔틀카트(?)를 타고 방문해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쁘지 않으시다면 여유 있게 걸어서 둘러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바다도 예쁘고 천천히 돌아봐야 할 곳도 많기 때문이죠. 저는 한국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오면 항상 이곳은 필수코스로 데려가고 있어요.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 있기 때문이죠.

태극기가 펄럭이는 한국인 위령탑이 있는 곳

한국인 위령탑은 주차를 한 후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도로의 왼쪽편에 위치하고 있어요. 공원 안에는 일본 각 현별로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희생자들의 출신지가 다양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웬만한 현보다 더 큰 규모로 그것도 독립된 장소에서 위령탑을 모시고 있어요. 그것도 공원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기원당 바로 옆에서 말이죠. 아마도 이것은 '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한국분들의 노력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요.

입구를 통과하면서 보게 되는 비문들. 비문은 타국에서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내용을 담고 있음

입구에 들어서서 위령탑으로 직진하면 위와 같은 비문들을 볼 수 있어요. 이때부터는 자연스레 같이 간 사람들도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어요. 비문에는 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가 희생자들을 위해 남긴 글과 더불어 이은상 시인이 지은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도 새겨져 있어요. 볼 때마다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 순간이 상상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이 비문들을 읽고 나면 이제서야 죄송한 마음으로 위령탑과 마주하게 됩니다.

공원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기원당 옆에 위치한 한국인 위령탑의 모습

위령탑은 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고 정면의 제단에는 사진과 같이 태극기가 붙어 있어요. 위령탑과 제단 사이에는 한반도 각지에서 들고 온 자그마한 돌들도 놓여져 있고요. 이날은 한국 전통혼례 복장을 한 신랑 신부 미니어처가 제단에 놓여 있었는데 왠지 더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가끔은 소주나 한국 담배를 놓아두고 가시는 관광객분들도 계신데 그것 또한 정말 감사드려요.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분명 전해졌을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3 평화기념공원을 거닐다

공원이 너무 넓어서 진짜 1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걷다 보면 예쁜 바다도 보이고, 박물관에서는 전망대에 올라 공원 전체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도 있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평화의 비(초석)였어요.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평화의 비(초석)

공원 센터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평화의 비(초석)는 전쟁 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요. 일본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만큼 여러 나라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정말 이름도 모르는 태평양 섬나라의 부속 섬에서 끌려와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도 많았고, 동남아시아에서 강제징용을 당해서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도 꽤나 있었어요. 그들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들의 바람도 모른 채 많은 수의 강제징용자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죠. 그중에는 한국인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가슴 아팠어요. 그리고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의 유해 발굴은 현재도 오키나와 북부의 모토부에서 진행중이랍니다.

수많은 비석 중에는 한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도 있음

오키나와는 과거에는 중국(청나라)이었던 적도 있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1972년까지 미국땅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문화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그리고 심지어는 과거 고려의 영향도 살짝 받은 아주 흥미로운 섬입니다. 미국령일 때 수많은 미군기지들이 이곳 오키나와에 생기게 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곳 평화기념공원에서 미군들이 제복 차림으로 자국 희생자들을 기리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었어요. 한국으로 따지면 부산의 UN 기념공원과 같은 곳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여러 나라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는 평화의 비(초석)

공원에는 일본 각 현마다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너무 많아서 대부분은 스킵했지만, 전 오키나와현의 위령탑만은 항상 가보고 있어요. (물론 위령탑이 늘어선 곳 제일 끝자락은 고지가 높아서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도 하지만 땀에 쩌는 것은 감수하셔야 될 듯...) 제가 갔을 때는 오키나와현의 위령탑 앞에서 여자분 3명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어요. 너무 엄숙한 분위기라 차마 사진은 찍을 수 없었는데, 여쭈어 보니 할머니, 딸, 손녀 3대가 같이 온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날이 할머니의 남편분이 전쟁에서 돌아가신 날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오키나와의 가정을 보면 할아버지나 그 위의 세대가 전쟁에서 희생된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사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도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오키나와 전투 때 일본 본토에 의해 강제 총알받이가 되어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희생되었거든요. 수 만명의 남성이 군으로 징집되었고, 심지어 여고생들도 히메유리 학도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징집되었죠.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자살을 강요당하게 되었는데, 평화기념공원 근처에는 희생된 이 여고생들을 기리기 위한 히메유리탑과 기념자료실도 있어요. 그만큼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전쟁으로 인해 원치 않은 희생을 치렀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 본토에 대한 미움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10년 이상의 극우 정권으로 인해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런 역사인식이 분명 약해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여요. 저도 이곳에 사시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 얘기를 할 때가 오히려 더 공감 가고 동병상련을 많이 느껴요. 그분들 중에는 최근 들어 오키나와 역사교육이 많이 없어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어요. 아마 한국인의 마음과 비슷하겠죠^^ 한 번은 서점에서 일본 역사 과목에 대한 문제집을 본 적이 있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고구려, 백제, 신라, 혹은 고려 정도의 고대국가 수준으로만 문화, 지리 등이 기술되어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어요. 물론 모든 문제집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최소한 제가 본 고등학교 문제집은 슬프지만 그랬었어요...ㅠㅠ

#4 오키나와의 상징, 아무로 나미에

오키나와 촌놈이 역사 얘기하다 왜 아무로 나미에를 갑자기 넣었을까요? 바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그리고 일본을 통틀어도 최고의 가수라고 할 수 있는 아무로 나미에가 바로 이곳 오키나와 출신이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무로 나미에처럼 이목구비가 상당히 뚜렷해요. 음... 눈이 엄청 큰데 체구는 크지 않은... 얼핏 보면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외형을 닮은 듯한... 그런 생김새가 오키나와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암튼 아무로 나미에는 일본 최고의 스타이기도 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좋아할 만한 거의 신(GOD)적인 존재라고 해야 될 것 같네요~ㅎㅎ 바로 그런 아무로 나미에가 일본의 국가인 키미가요를 부르지 않았던 적이 있었어요. 물론 일본에서는 엄청난 사건이었고요. 그 이유는 과거 일본 본토에 의해 본인이 태어난 오키나와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님 가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어떤 연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의 일본 연예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강단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여요. 예전에는 학창 시절에 국가제창 시 키미가요를 부르지 않은 오키나와 교사와 학생들이 꽤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아마 징집되어 전사자로 돌아온 학생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한 영향이 아무로 나미에에게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아님 진짜로 가사를 몰랐을 가능성도 있고요~ㅎㅎ 주위에 가사 모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거든요...^^

오키나와 출신의 일본 최고 스타 아무로 나미에는 은퇴 투어의 마지막 콘서트도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마무리했음

작년에 아무로 나미에 은퇴 콘서트가 있었는데 그 여정의 마지막을 본인의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마무리했어요. 정말 시내에 나가면 신천지... 아니 온 천지에 아무로 나미에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대형 빌딩들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 기항하는 초대형 크루즈선에서도 아무로 나미에의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기항하는 초대형 크루즈선들 중에서는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문제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도 있음ㅠㅠ) 그만큼 오키나와 사람들의 아무로 나미에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HY라는 유명한 오키나와 출신의 그룹도 있지만, 아직은 비견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로 나미에에 대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애정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자부심, 안타까움, 격려 등 수많은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은퇴 공연이 있을 무렵에는 초대형 크루즈선에서도 아무로 나미에(We Love Namie)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음

#5 평화기념공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오키나와 촌놈은 평화기념공원에 갈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지고 숙연해짐을 느껴요. 많은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 곳이자,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일본의 수학여행 시즌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단체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아오고 있어요. 박물관 1층에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고 가이드들은 열심히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죠. 하지만 아쉬운 것은 마치 미국이 일본인들을 일방적으로 죽인 것처럼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물리적으로는 미국에 의해서 희생된 것은 분명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여요. 그래서 항상 제가 여기서 물어보는 것이 "왜?"거든요. 좀 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인데, 지금 현재 이곳의 교육방향은 그런 것들을 감추는 쪽이어서 앞으로는 더욱더 알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평화기념공원이 있고, 왜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왜 그런 전쟁들은 발생하였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태평양의 티니안섬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죠.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실은 폭격기가 이륙한 섬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인구 약 3천명 중에 45%가 한국계라고 하네요. 근데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게 알고 보니 강제징용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일본이 패전하고 물러날 때 주로 강제징용자들은 무참히 사살되었는데 다행히 일부가 정글로 피신해 현지인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성이 킹(김), 키오신(강), 슁(신)이 많다고 하는데... 암튼 중요한 것은 전쟁은 어떤 목적에서든지 간에 절대로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죠. 오키나와나 티니안섬과 같은 많은 희생자들과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만을 남기기 때문이에요. 승자와 패자가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보상을 아무리 해준다 한들 가족들의 상처가 과연 아물 수 있을까요? 평화기념공원도 그런 의미에서 전쟁의 잔인함을 알리고 더 나아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까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보다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쓰다 보니 내용이 굉장히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혹시나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되신다면 꼭 한 번 이곳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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